The Banshees of Inisherin

 

좋은 영화라는 추천을 세 번쯤 받았다.

 

 

I best go over there and do whatever that thing over there I was gonna do was.

 

맥코닉 부인이 예언한 두 죽음 중 하나는 도미닉이다.

도미닉이 처음 앵글에 들어올 때 갈고리를 하나 들고 등장하며 '이것을 어디에 쓰는 걸까요'하고 묻는데

이 물건으로 호수에서 도미닉의 시체를 꺼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발을 헛디딘 것 같다'고 짐작하지만, 도미닉은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암시가 있는데 하나는 인용한 저 대사이다. 저쪽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어떤 것인지는 설명되지 않는데, 아마 이때 자살을 결심하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시오반에게 구조 요청을 하는 중으로 보인다.

 

하나의 암시가 더 있는데, 호수 건너편 맥코닉 부인의 손짓이다.

시오반 시점에서 맥코닉 부인의 손짓은 시오반을 향한 손짓이 아니다.

 

맥코닉 부인은 시오반의 왼쪽 어딘가를 향해 손짓하고 있고, 시오반의 왼쪽에서 도미닉이 등장한다. 건너오라고 손짓하던 중이고, 도미닉은 밴시의 주문에 응해 호수를 건너려고 하던 중이다.

 

이 장면은 파우릭과 도미닉의 절벽에서의 대화에 이어져있는데, 도미닉이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유일하게 마을에서 다정한 사람이던 파우릭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파우릭은 본토의 음대생에게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거짓말로 둘러대 집으로 보내버리고, 이 행동에 도미닉이 이렇게 반응한다.

 

 

 

두 번째 죽음은 시오반이다.

당나귀 제니의 죽음과 도미닉으로 두 개의 카운트를 채우고 시오반이 본토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영화에는 시오반의 죽음에 대해 다중적으로 암시되어 있지만 도미닉처럼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당나귀 제니의 죽음을 부각시켜 시오반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관객들은 부정할 수 있도록 열려 있지만, 반복되는 암시에서 시오반의 죽음을 알아챌 수 있다.

 

첫번째는 도미닉과 만나던 시점의 시오반이 신발을 벗고 있다는 점이다. 절벽신에서 바로 이어져 시오반이 호숫가에 서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호숫가에 온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는 않아 시오반이 염세에 빠져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암시된다.

두번째는 도미닉이 이 장면에서 "We have a lot of things in common."이라고 하는 대사이다.

세번째는 이 장면 이후에 파우릭과의 대화에서 "You'll be back soon, won't you?"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점이다.

네번째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이 장면이다.

 

 

시오반을 송영하는 파우릭 뒤로 맥코닉 그림으로 보이는 실루잇이 비춰지지만 클로즈업 하지는 않는다. 다만 프레임의 정중앙에 있고, 시오반이 두 사람을 교차로 보는 시선과 파우릭을 향해 웃어보이던 시선에서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고 표정이 굳어지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어 있어 이 검은 실루엣이 어떤 사물이나 지형이 아니라 매코닉 부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호수, 바다를 건너는 장면 역시 도미닉과 겹쳐지게 연출되어 있는 부분이다.

 

당나귀 제니의 죽음은 도미닉 죽음에 대한 암시에 가깝다. 후반부 거칠어지는 서사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도미닉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짧은 장면으로만 다루더라도 영화의 서사가 끝을 향해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도미닉이 파우릭의 집에 갔을 때, '차라리 당나귀를 들이는 게 낫겠네' 라고 하는 장면이나, donkey 가 주로 바보같은 사람을 이른다는 점에서 도미닉과 제니의 관계가 설명된다.

 

시오반의 편지에서도 약간의 암시가 있다. Mainland 에 정착하여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Inisherin 을 현생으로 mainland 를 죽음 이후의 삶으로 해석할 수 도 있다.

 

I am safely ensconced in the mainland and its lovely here.

 

 

Because there's nothing for you. Nothing but more bleakness and grudges and loneliness and spite and the slow passing of time until death.

 

현생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죽을 때 까지 느리게 가는 시간만 있을 뿐이다.

 

시오반은 이런 시각에서 콜름과 겹쳐지는 인물이고, 콜름이 음악 활동으로 삶의 의미를 탐색하면서도 의미의 정립에 실패하며 파우릭과 갈등이 일어나는데 시오반은 파우릭과 갈등하기보다는 파우릭의 보호자로서 의미 없는 삶에 대해 편지를 통해 나긋이 알려주고 있다.

 

파우릭은 답장에서, '정착'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시오반이 '정착'했다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정착이 문자 그대로의 정착이 아닌 다른 해석을 유도하려는 의도이다. 삶에서 벗어나면,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추구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 정착하기 때문이다.

 

시오반의 편지에 There's a river running past my window as I write and the people already seem less bitter and mental. I'm not sure why, but I think it's 'cause a lot of them are from Spain. 라는 부분이 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언급된 이유를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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